2021년 5월 9일 일상
-흑역사를 갱신했다.
이사를 온 이후 처음으로 이부자리를 세탁했다.
원룸의 세탁기는 용량이 그리 크지 못했는데
이불과 얇은 커버를 넣었음에도 통이 가득 찼다.
그런데 무식하게도 베개까지 우겨넣었다.
부피가 너무 큰데다 숨이 죽지도 않는 그런 녀석을..
세탁기가 가동하는데
탈수를 하는 과정에서 전혀 듣지 못했던 거친 소리가
들리면서 세탁기가 뭐 잘 못 먹은 것처럼 진동했다.
머릿 속으로는 베갯속이 터져나와 통 안이
엉망진창이 되는 것을 상상하고 있었지만
설마 정말 그러겠냐는 생각에 탈수가 완료될 때까지
내버려두었다.
통 내부는 참혹했다.
어느새 통 상부까지 솟아오른 베개가 회전하면서
세탁조 내부와 마찰을 일으켰고
플라스틱으로 이루어진 부품들이 그로 인해
갈려서 찢어진 모양을 하고 있었다.
베개도 온전치 못했다.
연이은 마찰에 헤지다 못해 솜이 튀어나왔다.
아무리 수선해도 다시 쓰진 못할 것 같았다.
에효, 또 하나 해먹었구나.
나중에 방을 뺄 때 세탁기 하나 물어줘야겠다.
-집안에서 내내 독서와 유튜브 시청만 하다가
2주 연속으로 이러다간 미치겠다고 생각했다.
무작정 차를 몰고 달렸다.
그러다 거제대교 근처에 있던 거래처로 향했다.
사업을 무리하게 확장하다가
끝내 잠수를 탄 거래처였는데
지금 가게는 어떤 상태인 걸까 궁금했다.
알고 있는 주소로 검색해서 간 곳은 내가 생각한 곳이 아니었다.
물어보려고 해도 사람들이 전화를 받지 않았다.
그래서 구 거제대교를 타고 통영으로 넘어갔다.
죽림 쪽으로 새로 난 도로를 타고
바닷가 도로를 달려보았다.
몇주전에 노동청 간다고 이쪽을 지나왔었지.
죽림 바닷가는 정비가 잘 되어있어서
관광지를 보는 듯 했다.
신도시라 그런지 바닷가 근처로 상가도 잘 꾸며져 있었다.
사람들이 저마다 바람을 쐬러 나왔는지
바다를 마주 바라보고 삼삼오오 모여있었다.
그렇게 지나쳐서 출구를 나오니 고성으로 가는 길이다.
이렇게 가다간 꼼짝없이 고성으로 가게 될 것 같았다.
곧 농산물 주문이 들어올테니 돌아가야 한다.
사량도 선착장으로 가는 길목에서 차량을 돌렸다.
-돌아가면서 연락이 닿아서 그 매장을 가볼 수 있었다.
사람은 하나도 없고 문은 닫혀있고.
어쩌다가 이 지경까지 와버린걸까.
설명해줄 사람 하나 없는 곳에서 미련없이 차를 돌렸다.
-집 근처 알뜰주유소에서 주유를 했다.
가득 채우니 43.000원 정도 나왔고 주행가능거리는 530km.
스파크는 리터당 연비가 안나와서 풀투풀방식으로 직접 재야 한다는 것이
불편하다.
어영부영하다보니 땅거미가 내렸고
또 얼레벌레 하다보니 자정이었다.
또 의미없이 휴일 하루를 보냈구나.
내일은 월급 부쳐줘야 하는 날이니
정신을 바짝 차리자.
이번에는 직원들이 찾아와서 이의를
제기하는 일이 없기만을 간절히 기도했다.